Artifex World Tales

Killer`s Day

[ Righteous killer can be exist? ]




Null.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는 사람은 이미 사람이 아니다.”

- 에이든 A. 블레어



I.


밤하늘은 화창해 별이 반짝이건만, A는 소낙비라도 맞은 양 폭삭 젖어있었다. 거칠게 숨을 헐떡이면서도 눈빛은 살아있다. 그는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늦은 밤의 공원은 가로등 불빛에도 한참 어두웠다. 여름내 무성히 가지를 뻗은 관목이 시야를 가려 보일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A는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공원에 그 말고 다른 사람은 없다는 것을. 겪은바, 그 또라이 목사놈은 기척을 숨기고 때를 기다릴 인물이 아니었다. 공격에 공격에 한 박자도 쉬지 않고 공격이다. 급작스럽게 쫓겨본 적은 여러 번 있지만, 이런 식으로는 아니었다. 끈질긴 추적과 집요한 추격은 분명 전문가의 솜씨였다.

“전문가에게 쫓겨야 할 정도로 나쁜 짓을 한 거 같지는 않은데….”

공원 근처에 아무도 없다. 그걸 확인하고 나서야 A는 쓰러지듯 벤치에 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더는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밤색 카디건을 벗었다. 땀에 푹 절어 몹시 축축하다. 그걸 던지듯이 옆에 두고서, A는 반소매 차림으로 밤바람을 만끽했다. 하지만 달궈진 몸뚱이는 쉽게 식을 줄 몰랐다.

숨을 고르면서, 그는 소문의 길거리 살인마를 떠올렸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각계각층을 가리지 않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희대의 살인마. 그러면서도 증거 하나 남기지 않는 철두철미한 녀석이 또라이 목사놈과 무슨 연관이라도 있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또라이 목사놈이 길거리 살인마일지도 몰랐다.

차별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A와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길거리 살인마. 우연히도 두 사람의 활동 영역은 하원시로 같았다. 그런데 하원시는 사냥터치고는 상당히 좁은 곳이다. 길거리 살인마로서는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지금까지는 별 반응 없어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던 걸까. 어처구니가 없어서 한숨밖에 안 나왔다.


9월도 끝 무렵에 접어들어 밤공기가 선선했다. A는 자취방 베란다의 흔들의자에 앉아 하이네켄과 함께 카프카에 열중하고 있었다. 어쩌면 카프카와 함께 하이네켄에 열중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거의 20년 전의 번역이라 술술 읽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난해하거나 몹시 지루하지도 않았다. 사람이 하룻밤 사이에 딱정벌레로 변하다니! 백 년 전의 작가가 쓴 소설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기발한 이야기들이었다. 그래서 A는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오직 독서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저기, 실례가 안 된다면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그 작자가 나타났을 때, A의 독서는 변신Die Verwandlung과 심판Der Proceß을 지나 학술원에 보내는 보고서Ein Bericht fur eine Akademie로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소설에 깊이 몰두해 있었기에 방해꾼의 등장이 썩 달갑지 않았다. 그리하여 A는 흔들의자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오직 고개만 돌려 그 작자를 내려다보았다.

방해꾼은 외국인이었는데, 이 주변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종교인이 입는 옷이라는 건 아는데, 무슨 종교인지가 기억나지 않았다. 하여튼 십자가 관련 예수쟁이들이 입는 옷이었다. 그것 말고는 별로 눈에 들어오는 것도 없어서, A는 시큰둥한 얼굴로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 말씀 얼른 여쭈어주시면 고맙겠는데요.”

“제가 한국의 주소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데, 혹시 성일 주택이 어딘지 아십니까?“

“여긴데요.”

“그렇습니까. 그럼 맞게 찾아온 거로군요. 다행입니다. 그럼 혹시 제가 찾는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예수쟁이의 질문에 A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마음 같아서는 ‘그걸 내가 어케 앎?’하고 면박을 주고 싶었지만, 너무 예의에 어긋나는 것 같아서 참기로 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제가 한국말이 서툴러서 그렇습니다. 제가 찾는 사람은 여기에 사는 데 이름은 알지 못합니다. 다만 그 악마는 스스로를 A라고 칭한다 합니다. 혹 짐작 가시는 바 있으신지요?”

“아니, 뭔가 잘못 아신 거 같은데, 전 저 자신을 그렇게 부른 적이 없어요. 보통은 슈퍼 섹시 가이라고 부르죠. 아니면 초절정 꽃미남이라거나.”

“……?” 

“농담 한 번 해봤습니다. 제 말뜻은 목사님께서 찾으시는 악마가 바로 저라는 겁니다.”

“저는 목사가 아닙니다.”

“스님치고는 머리가 너무 긴데요.”

“제가 스님이 아니기 때문일 겁니다.”

“여호와의 증인에서 나오는 사람들은 양복을 입고 다니는 거로 아는데요.”

“저는 바티칸에서 파견 나온 신부 힐데브란트Hildebrand입니다. 그런 이름 모를 이단 종파 따위 알지 못합니다. 그건 그렇고, 방금 하신 말씀 다시 한번 들려주시겠습니까?”

“스님치고는 머리가 너무 길다는 거요?”

“그 전에 했던 말 있잖습니까.”

“목사님이 찾으시는 악마 놈이 저라는—.”

그는 말을 제대로 끝마치지 못했다. 별안간 베란다가 무너져내렸기 때문이다. 앉은 채로 봉변을 당했지만, 다행히 다친 곳 하나 없었다. 아무리 2층이었다 해도 다치지 않은 것은 천운이었다. 잔해 속에서 그는 꼼짝않고 상황을 살폈다.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흙먼지를 뚫고서 목사놈이 달려들었다. 서글서글한 미소는 온데간데없고, 다분히 전투적인 표정이었다. 한 손에는 괴상하게 생긴 몽둥이를 들고 있다. 논리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었다. 베란다를 부숴 먹은 건 목사놈이 틀림없었다. 수리비를 청구해볼까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지금 당장은 도망치는 게 맞는 거 같았다.


짧은 회상이 그에게 가져다준 결론은 간단했다. 목사놈은 길거리 살인마가 아니다. 그럴 수가 없었다. 살인마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데, 목사놈은 시작과 동시에 자취방 베란다를 아주 끝장내버렸으니까.

이 지랄맞은 상황을 집주인 누나에겐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외국인 목사가 눈을 까뒤집더니, 도깨비방망이 들고 와장창 때려 부쉈다고 말하면 믿어주기나 할까. 아무래도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았다. 어디서 헛소리 찍찍 하냐고 뺨따귀 맞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나저나 바티칸과 악마라니, 댄 브라운의 소설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는데….” 그러나 A는 반물질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었다. 소설에서 읽은 설명이 그가 아는 전부였다.

뭐든 좋다. 문제는 이거였다. 차별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A는 여고생만을 죽인다. 그런데 목사놈은 여고생이 아니었다. 죽일 수가 없으니 도망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목사놈은 지구 끝까지 쫓아올 기세였고, 한참 쉬었다 해도 A의 체력은 여전히 바닥을 기고 있었다.

단순한 니어미스 해프닝이라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지만, 상대는 프로다. 끈질긴 추적과 집요한 추격을 통해 다시금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낼 터였다. 마주친 이상 어떻게든 결착을 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에 A는 조금 우스운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현실은 조금도 우습지 않다. 죽이지 않고 그 목사놈을 제압할 방법이 없었다. 누군가 도와준다면 또 모를 일이지만, 안타깝게도 이 버드나무 공원 근처에는 적도 아군도 없다. A는 누운 채로 주머니 속의 폴딩 나이프를 꺼내 칼날의 상태를 확인했다. 집게손가락보다도 짧지만, 날은 시퍼렇게 살아있었다.

“그런 날붙이로 뭘 어쩔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거참, 날붙이로 할 수 있는 게 고기 써는 거 말고 또 있나.”

대답인지 혼잣말인지 모를 소리를 우울히 중얼거리며 A는 벤치에서 몸을 일으켰다. 가로등 불빛을 등진 채 서 있어 목사놈의 모습은 전체적인 실루엣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예수쟁이 아저씨, 거 죽을 때 죽더라도 이유는 알고 죽읍시다.”

“악마 놈을 죽이는 데 이유가 필요한가?”

“악마 놈이 죽는 데는 이유가 필요할 수도 있잖아.”

“헛소리로군.”

“그런 이야기 자주 들어. 그나저나 성직자 양반이 사람을 그렇게 막 죽여도 되는 거야?”

“내가 죽이는 건 악마 뿐이다.”

“내가 죽이는 건 여고생 뿐인데.”

“그래서 네 녀석이 악마라는 거다.”

“그래서 예수쟁이 아저씨가 날 죽이려고 하는 거로군. 잘 알겠는데, 난 그저 좀 특이한 취향을 가졌을 뿐 어떤 면에서는 예수쟁이 아저씨랑 완전히 동일해.” 그의 말에 목사놈은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모욕이다.”

“그게 왜 모욕이야? 나도 예수쟁이 아저씨도 차별적 살인을 하는데, 그럼 같은 거 맞잖아. 안 그래?”

이번 헛소리에 대한 답변은 도깨비방망이의 형태로 날아들었다. 그 열렬한 답변은 공원의 벤치를 순식간에 폐품으로 전락시켰다. 목사놈이 베란다를 어떻게 박살 냈는지 알게 되었지만, 그다지 기쁘지는 않았다. 잽싸게 피하지 못했다면 A의 몸뚱이도 벤치와 함께 폐품 처리되었을 터였다. 피곤죽이 되었을 자신의 몸뚱이를 생각하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A는 폴딩 나이프의 손잡이를 꽉 쥐었다. 어깨 관절과 허벅지 쪽을 집중적으로 찌르면 목사놈은 반병신이 되겠지만, 어쨌든 죽이지 않고도 제압할 수 있다. A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 방법으로는 접근전이 되고 만다. 그는 발걸음을 주저했다. 실력 차이는 고만고만할 테지만 상성이 나빴다. 이제 와서 응원을 부르기에도 늦었다. 숱한 살인이 있었지만, 이런 적은 없었다. A는 처음으로 죽음을 각오했다.


그때, 무언가 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목사놈을 덮쳤다.


급작스러운 제삼자의 난입에 A는 질끈 눈을 감았다. 감긴 눈꺼풀을 뚫고 섬광이 쏟아졌다. 후폭풍은 뒤늦게 찾아왔다. 그 순간까지도 눈을 감고 있었기에 A는 충격에 대비하지 못했다. 그는 밀쳐지듯 뒤로 나자빠졌다.

거기에 서 있는 것은 여전히 실루엣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실루엣만으로도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소녀의 형상을 하고 있었는데, 우물거리는 입 밖으로 다리 한쪽이 삐져나와 있었다. 비주얼이 너무 충격적이었던지라 A는 주저앉은 채로 그걸 지켜볼 뿐이었다. 실루엣은 이내 냉면 들이키듯 후루룩 다리 한쪽을 마저 삼켰다.

”왓더……?”

우물거리는 것 말고는 미동도 없었다. 이대로 가만 앉아있기도 뭣해서, A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녀의 고개가 그를 따라 움직였다. 노려보는 눈빛이 형형하고도 번뜩거린다. 어쩐지 소름 끼치는 시선이었다.

잘 믿어지지는 않지만, 저 소녀는 목사놈을 한입에 집어삼켰다. 소녀가 마음만 먹는다면 그 역시 한입에 잡아먹힐 공산이 컸다. 그리고 A는 최소한의 발악도 하지 못할 것이 뻔했다. 소녀의 정체는 알 수 없었으나, 그 정도는 불 보듯 비디오였다.

“멍멍!”

“……?!”

“멍멍 왕와…아, 이게 아니구낭. 오빠야, 내가 뭐 하는지 봤어?”

“안 본 거 같은데 봤다고 다그치면 못 봤다고는 말 못 할 거 같기도 하고…”

“무슨 소린지 모르겠넹. 하여튼 오늘 밤의 일을 떠벌리고 다니면 오뺘아를 앙~하고 잡아먹을꺼야! 알았징?”

“넹….” 잡아먹겠다는 소리가 농담처럼 들리지 않아서, A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녀는 잔뜩 해진 누더기를 질질 끌면서 공원 밖으로 나갔다. 홀로 남겨진 A는 멍하니 서서 그걸 바라만 볼 뿐이었다. 여러모로 충격적인 상황의 연속이었던지라 좀처럼 정신을 차리기가 어려웠다. 이 모든 게 너무나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한바탕 악몽이라도 꾸고 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과연 그 소녀의 정체는 무엇일까. 풀리지 않을 의문 하나가 그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쓸데없는 고민을 하기에 밤은 충분히 길었다.







글쟁이 후기 >>

무라카미 하루키를 인용한다면, 글쟁이는 누구나 거짓말쟁이입니다. 그러나 보통의 사기꾼과는 달리 글쟁이는 거짓말을 잘 부리면 부릴수록 인정받는 직업입니다.

제 거짓말을 하나 실토해야겠습니다. 레이디 킬러 A의 이야기는 사실 3부작이 아닙니다. 처음 기획했을 때야 3부작이었지만, 이런 신나는 친구를 놀리고 있어서야 안되겠죠. 그래서 기지개를 켤 겸 해서 가벼운 단편 하나 써보았습니다.


Null에 대해 한 마디 한다면, 예,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는 사람은 없습니다. 힐데브란트처럼 종교적인 정의감에 의해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A처럼 과거의 트라우마로 인해 여고생만을 살해하는 살인자도 어디엔가는 분명히 존재할 것입니다.

두 사람은 살인을 하지만, 한 사람은 정의감에 의한 살인이고 다른 한 사람은 트라우마에 의한 살인입니다. 그렇다면 이 두 살인의 무게는 다른 걸까? 그런 개인적인 질문이 담겨있는 단편이기도 합니다.


헛소리는 이쯤에서 관두고, 다음 작품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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